이사 나갈 때 도배·장판 비용, 임차인이 어디까지 부담할까

 가구가 놓인 거실 벽면 - 임대차 종료 후 벽지·바닥 원상복구 분쟁을 상징하는 이미지

이사 나가는 날, 벽지 변색과 못 자국을 두고 보증금 다툼이 시작됩니다. (사진: Phillip Goldsberry, Unsplash)

세월이 흘러 저절로 바랜 벽지, 가구를 놓아 생긴 자국, 햇빛에 변색된 장판 같은 통상의 손모(자연 노후화)는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물어낼 의무가 없습니다. 이 비용은 이미 매달 낸 차임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시각입니다. 반대로 흡연·반려동물·관리 소홀처럼 임차인의 사용 방식 때문에 생긴 훼손은 임차인이 책임집니다. 문제는 이 둘의 경계인데, 오늘은 그 기준을 판례와 함께 정리합니다.

임대차 보증금 정산 상담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벽지가 누렇게 떴는데 도배비 전액을 물어내라고 합니다", "벽에 액자 걸려고 못 몇 개 박은 게 전부인데 벽 전체 보수비를 청구당했어요", "장판이 햇빛에 색이 바랬다고 새로 깔라네요." 임대인은 "들어올 때처럼 해 놓고 나가라"고 하고, 임차인은 "이게 왜 내 잘못이냐"고 맞섭니다. 양쪽 다 일리 있어 보이지만, 법은 생각보다 명확한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핵심은 '통상의 손모'와 '임차인의 귀책 사유로 인한 훼손'을 갈라내는 것입니다.

1. 원상회복의무, 무엇을 어디까지 되돌려 놓는 것인가

민법과 판례를 통하여 어느 정도 일반적인 지침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임차인은 임대차가 끝나면 빌린 목적물을 임대인에게 돌려주면서 원래 상태로 회복할 의무를 집니다(민법 제654조가 준용하는 제615조). 그런데 여기서 '원래 상태'가 어디까지인지가 모든 분쟁의 씨앗입니다.

법원은 '원래 상태'를 입주 당시의 새것 같은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임대인은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 곧 수선의무를 부담합니다(민법 제623조). 사람이 살면 벽지는 바래고 바닥은 닳습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소모까지 임차인에게 떠넘기면, 임대인은 받을 몫보다 더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법원은 원상회복의 범위를 "임차물을 통상의 용도로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로 복구하여 반환하는 것"으로 봅니다.

대법원도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는 한 줄로 정해지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목적물의 상태, 임차인이 수리하거나 변경한 내용을 모두 따져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9. 8. 30. 선고 2017다268142 판결). 임차인이 직접 설치하거나 바꾼 것은 철거해 돌려놓아야 하지만, 살면서 자연히 닳은 부분까지 새것으로 만들어 놓을 의무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2. 통상손모 vs 임차인 과실, 가르는 기준

두 개념을 구분하는 잣대는 결국 '귀책 사유'입니다. 누가 일부러 또는 부주의로 만든 손상인가, 아니면 정상적으로 살기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생기는 손상인가. 자연 노후화에는 임차인의 잘못이 없으므로 임대인이 감수하고, 임차인의 사용 방식이 원인이 된 훼손은 임차인이 부담합니다.

[표 1] 통상손모 vs 임차인 과실의 구분 기준
기준통상손모 (임대인 부담)임차인 과실 (임차인 부담)
원인정상적 사용·시간 경과고의·부주의·용법 위반
예측
가능성
계약상 당연히 예정됨예정 범위를 벗어남
귀책임차인 잘못 없음임차인 잘못 있음
비용
반영
이미 차임에 반영별도 배상 대상

법원이 "이미 차임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점이 중요합니다. 임대인은 건물이 해마다 조금씩 낡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큼을 감안해 차임을 정합니다. 자연 노후화 비용은 매달 받은 임대료 안에 녹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퇴거할 때 또 받으면 이중으로 받는 셈이 됩니다.

3. 못 자국·벽지 변색·곰팡이, 항목별로 따져 봅니다

실제 분쟁은 추상적 기준이 아니라 구체적 항목에서 터집니다. 자주 다투는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같은 항목도 정도와 경위에 따라 결론이 갈리므로, 표는 '원칙적 방향'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표 2] 자주 다투는 항목별 부담 주체
항목원칙설명
벽지
변색
임대인햇빛·세월에 의한 자연 변색은 통상손모
가구
자국
임대인냉장고·장롱 놓은 눌림·전기 그을음 자국
장판
마모
임대인보행으로 닳거나 햇빛에 바랜 정도
작은
못 자국
사안별액자용 핀·압정 수준은 통상 범위로 보는 예가 많음
큰 못·
앵커
임차인벽을 크게 뚫거나 마감을 훼손한 경우
흡연
변색
임차인실내 흡연에 의한 변색·악취는 용법 위반
반려동물
훼손
임차인긁힘·오염·냄새 등 사용 방식이 원인
곰팡이원인별구조적 누수·결로면 임대인, 환기 방치 등 관리 소홀이면 임차인

표에서 보듯 곰팡이가 가장 까다롭습니다. 같은 곰팡이라도 건물 자체의 누수나 단열 결함처럼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됐다면 임대인이, 임차인이 환기·청소를 게을리해 번지도록 방치했다면 임차인이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곰팡이 분쟁에서는 원인 규명 자료, 곧 사진·영상과 전문가 의견이 승패를 가릅니다.

'경과연수'와 감가상각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
임차인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청구액 전부를 무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도배한 지 8년 된 벽지를 임차인이 훼손했다고 해도, 그 벽지는 이미 상당 부분 가치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법원과 분쟁조정 실무는 시설의 내용연수와 사용 기간을 따져 감가상각한 잔존가치만큼만 부담시킵니다. 새 벽지 기준 100만 원이 들더라도, 노후 정도를 반영하면 임차인 부담은 그 일부에 그칠 수 있습니다.

4. '원상복구한다'는 특약 한 줄, 어디까지 효력이 있나

임대인 측에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근거가 계약서 특약입니다. "임차인은 계약 종료 시 원상복구한다", "손상이 있을 시 원상복구하기로 한다" 같은 문구입니다. 이 한 줄이면 통상손모까지 전부 임차인이 물어야 할까요? 법원의 답은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법원은 통상손모에 대한 보수비용을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려면, 그런 합의가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까지, 어떤 비용으로 복구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임차인이 그 내용을 분명히 인식하고 합의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원상복구한다" 정도의 일반적·포괄적 문구만으로는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이 떠안기로 약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임대인·임차인 모두 확인하세요
임대인이라면,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에게 부담시키고 싶다면 "거주 기간과 무관하게 도배·장판 전체를 새것으로 교체해 반환한다"처럼 대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약에 적어야 합니다. 임차인이라면, 계약 전 사진·동영상으로 입주 시 상태를 남겨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어입니다. 입주 당시 이미 있던 흠까지 떠안는 일을 막아 줍니다.

5. 관련 판례 —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대표적 판결이 있습니다. 공장 건물 임대차에서 임대인이 1억 5,600여만 원의 원상회복비용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임차인이 통상적인 사용을 한 후에 생기는 임차목적물의 상태 악화나 가치의 감소를 의미하는 통상의 손모는 임대차계약의 본질상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 가치 훼손 부분의 경제적 평가는 이미 차임 등에 반영되어 있다. 이에 관하여는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통상의 손모로 인한 부분까지 임차인에게 원상회복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6. 2. 선고 2019가합4453 판결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대인이 청구한 1억 5,600여만 원 가운데 통상손모로 인한 부분을 빼고, 감정인이 인정한 4,500여만 원만 인정했습니다. 자연 노후화는 수선의무를 지는 임대인이 감수할 부분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 판결은 앞서 본 대법원 2017다268142 판결의 틀(원상회복 범위는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을 임대인·임차인의 부담 배분에 적용한 사례로, 실무에서 임차인 측 방어 논리의 출발점이 됩니다.

[표 3] 참고 판례·법령 정리
구분요지
2017다
268142
원상회복 범위는 계약 경위·목적물 상태 등을 따져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대법원 2019. 8. 30.)
2019가합
4453
통상손모는 임차인 원상회복의무에 포함되지 않음, 임대인 감수(서울중앙지법 2021. 6. 2.)
민법
§654·615
임차인의 임차물 원상회복의무 근거 조문
민법
§623
임대인의 사용·수익 상태 유지(수선)의무

※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국가법령정보센터. 하급심 판결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어 일반론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6. 분쟁이 생겼다면 — 절차와 증거

원상복구 분쟁은 보증금 정산과 맞물려 터집니다.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보수비를 공제하고 돌려주면, 임차인은 공제가 부당하다며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는 구도가 가장 흔합니다. 이때 결과를 가르는 것은 법리보다 증거입니다.

[표 4] 단계별 대응 절차
단계할 일
1. 기록입주 시·퇴거 시 상태를 사진·동영상으로 날짜와 함께 남기기
2. 산정임대인 청구 항목별로 통상손모·과실·경과연수(감가) 구분
3. 통지부당 공제분에 대해 내용증명으로 보증금 반환 요구
4. 조정대한법률구조공단·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조정 신청
5. 소송합의 불성립 시 보증금반환청구 소송 제기
실무에서 가장 강한 증거
입주하던 날 집 안 구석구석을 동영상으로 찍어 두는 것입니다. 벽지 상태, 바닥, 창틀, 기존 못 자국까지 한 번에 담아 두면, 퇴거 시 "원래 있던 흠"과 "내가 낸 흠"을 명확히 가를 수 있습니다. 곰팡이가 쟁점이라면 누수·결로 여부에 대한 사진과 전문가 점검 의견을 함께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7. 변호사로서 드리는 당부

원상복구 분쟁에서 임차인이 손해 보는 지점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 자연 노후화까지 당연히 물어야 한다고 지레 포기하는 것. 둘째, 입주 시 상태를 기록하지 않아 기존 흠까지 떠안는 것. 셋째, "원상복구" 특약 한 줄에 눌려 협상조차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상손모는 원칙적으로 임대인 몫이고, 과실분도 경과연수를 반영하면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반대로 임대인이라면, 통상손모까지 받고 싶을 때는 막연한 "원상복구" 문구가 아니라 대상·범위·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은 특약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툼이 생겨도 약정의 효력을 인정받습니다. 결국 분쟁의 8할은 계약서 특약과 입주 시점의 사진 한 장에서 갈립니다. 보증금 액수가 적지 않다면, 공제 명세를 받은 단계에서 한 번쯤 전문가와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8. 자주 나오는 질문(FAQ)

Q1. 벽지가 누렇게 변색됐는데 도배비 전액을 물라고 합니다. 줘야 하나요?
햇빛과 세월에 의한 자연 변색이라면 통상손모로 보아 임차인이 부담할 의무가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실내 흡연으로 인한 변색·악취처럼 임차인의 사용 방식이 원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변색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핵심입니다.
Q2. 액자 걸려고 못 몇 개 박았습니다. 벽 전체 보수비를 물어야 하나요?
일반적인 액자용 핀이나 압정 수준의 작은 자국은 통상적인 거주에 따른 손모로 보는 예가 많습니다. 반면 큰 못이나 앵커로 벽을 크게 뚫고 마감재를 훼손했다면 그 부분은 임차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정도와 경위에 따라 갈립니다.
Q3. 계약서에 "원상복구한다"고 적혀 있으면 무조건 다 물어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포괄적 문구만으로는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이 부담하기로 약정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통상손모를 임차인에게 지우려면 대상과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임차인이 그 내용을 분명히 인식했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입니다.
Q4. 임차인 과실이 맞긴 한데, 들어온 지 오래된 집입니다. 새것 값을 다 줘야 하나요?
아닙니다. 시설의 내용연수와 사용 기간을 반영한 감가상각 후 잔존가치만큼만 부담하는 것이 실무입니다. 오래된 벽지·장판일수록 임차인이 실제로 무는 금액은 줄어듭니다.
Q5.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누구 책임인가요?
원인에 따라 갈립니다. 건물의 누수나 단열·결로 같은 구조적 문제라면 임대인 책임에 가깝고, 임차인이 환기와 청소를 게을리해 번지도록 방치했다면 임차인 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곰팡이 분쟁은 원인을 입증할 사진·전문가 의견이 결정적입니다.

정리하면, 원상복구 분쟁의 승부는 손상의 원인이 자연 노후화인가 임차인의 잘못인가, 그리고 그것을 입증할 기록이 있는가에서 갈립니다. 이 두 가지만 챙기면 임차인도, 임대인도 불필요한 다툼과 손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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