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거래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갚아야 할 사장님이 어느 날 가게를 다른 사람 명의로 넘겨 버립니다. 간판도, 자리도, 장사하는 사람도 그대로인데 '사장만 바뀌었다'며 빚을 모른 척한다면, 채권자는 돈을 떼일 수밖에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상호(간판)를 계속 쓰는 한, 영업을 넘겨받은 사람도 종전 영업의 빚을 갚아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승소 판결(대전지방법원 2025가소208551)을 통해 상호속용 양수인의 책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이 글의 목차
1. 이 사건을 한눈에 — 사건의 구조
복잡해 보이지만 구조는 단순합니다. 수산물 납품업체(원고)가 음식점 '○○바다'에 물건을 대고 약 2,855만 원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음식점의 영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원고는 영업을 넘겨받아 같은 상호로 장사를 계속하는 양수인을 상대로 대금을 청구했습니다. 전체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채무를 진 쪽은 영업을 넘긴 뒤 곧바로 개인회생을 신청했고, 가게는 같은 자리·같은 간판으로 계속 운영되었습니다. 원고는 '실제로 영업이 넘어갔고 간판이 그대로라면, 넘겨받은 사람도 그 영업의 빚을 책임져야 한다'고 보아 상법 제42조의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2. 사실관계 — '○○바다'를 둘러싼 이야기
(1) 물품대금 채권의 발생
원고는 수산물 도소매업을 하는 회사입니다. 대전에서 '○○바다'라는 일식 음식점에 수산물을 납품했는데, 그 대금 28,552,170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원고는 먼저 음식점을 운영하던 사람을 상대로 물품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아 두었습니다. 즉, 원고에게는 이미 '○○바다' 영업에서 발생한 명백한 물품대금 채권이 있었습니다.
(2) 한 가게, 두 명의 운영자 — 모자(母子)가 얽힌 구조
그런데 이 음식점의 운영 구조가 다소 복잡했습니다. 사업자등록 명의자는 아들 안○○ 씨였지만, 실제로 음식점을 총괄하고 원고와의 거래를 직접 담당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강○○ 씨였습니다. 가게는 2019년 '○○감자탕'으로 문을 열었다가 2023년 '○○바다'(일식)로 상호와 업종을 바꿔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 왔습니다.
원고의 판결상 채무자는 '실제 운영자' 강○○ 씨였지만, 음식점의 사업자등록 명의는 아들 안○○ 씨였습니다. 이 '명의와 실질의 불일치'가 나중에 피고의 핵심 방어 논리가 됩니다.
(3) 영업양도,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개인회생
적자가 누적되자, 사업자 명의자였던 안○○ 씨는 2024년 6월 15일 제3자(이 사건의 피고)에게 음식점을 넘기는 양도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피고는 자기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바다' 간판으로 일식 영업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의미심장하게도, 안○○ 씨는 양도계약을 맺은 불과 엿새 뒤인 2024년 6월 21일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영업이라는 핵심 재산을 미리 다른 사람에게 빼돌린 듯한 정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양수 이후에도 실질 운영자였던 강○○ 씨는 계속 가게에서 일했고, 영업 대금이 양도인 측 가족 명의 계좌로 입금되는 정황까지 확인되었습니다.
양도의 구체적 경위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양도인 측은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해 월세와 관리비가 여러 달 밀려 있었고, 피고는 그 밀린 임대료 등을 대신 부담하는 조건으로 가게를 넘겨받았습니다. 피고는 인수 후 일부 시설을 손보고 집기를 교체한 뒤 같은 '○○바다' 간판으로 영업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임대인의 양도 동의가 늦어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피고 역시 건강이 크게 나빠지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런 사정들은 '밀린 임대료를 떠안은 단순한 권리금 거래였다'는 피고의 항변과 '실질적 영업양도였다'는 원고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됩니다.
(4) 원고의 선택 — 양수인에게 책임을 묻다
이런 상황에서 원고는 영리한 선택을 했습니다. 빚을 진 사람을 쫓아다니는 대신, 같은 상호로 영업을 이어받은 양수인(피고)을 상대로 물품대금을 청구한 것입니다. 근거는 상법 제42조 제1항, 즉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영업양수인의 책임'이었습니다. 원고의 소송대리는 법무법인 중용(담당변호사 이승환)이 맡았습니다.
이 선택이 왜 중요할까요? 빚을 진 양도인은 이미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가 있어, 그를 상대로 판결을 받아 봐야 실제로 돈을 회수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영업을 이어받아 같은 가게를 운영하며 매출을 올리고 있는 양수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회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집니다.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은 바로 이런 국면에서 채권자에게 실효적인 무기가 됩니다.
3. 핵심 쟁점 — 원고와 피고의 법정 공방
피고는 책임을 강하게 다투었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정면으로 부딪힌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쟁점 ① 진짜 '영업양도'인가, 단순 '비품·권리금 거래'인가
피고는 "내가 넘겨받은 것은 영업 자체가 아니라 냉장고·식기세척기·식탁·의자 같은 비품뿐이고, 양도 대가로 준 돈도 사실은 밀린 월세·관리비를 대신 갚아 준 권리금 성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 직원을 그대로 넘겨받는 고용승계 조항이 없고, ㉡ 같은 업종을 못 하게 막는 경업금지 조항도 없으며, ㉢ 거래처나 영업 노하우(know-how)를 넘긴다는 내용도 없으니 상법상 영업양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면 원고는 "계약서의 형식적 문구가 아니라 실질을 보아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바다' 상호로 같은 일식 영업이 계속되고 있고, 영업에 필수적인 물적 설비가 통째로 넘어갔으며, 실질 운영자였던 강○○ 씨가 양수 후에도 계속 일하고 있고, 기존 거래처(다른 수산물 납품업체)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특히 계약서에 '1년 뒤 상호를 바꾸라'는 조항이 있다는 것은, 거꾸로 그 1년 동안은 상호를 계속 쓰기로 합의했다는 증거일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쟁점 ② 그 빚은 '양도인의 영업상 채무'인가 — 채무자 불일치 문제
피고의 두 번째 방어선은 날카로웠습니다. "설령 영업양도라 하더라도, 원고의 물품대금 채권은 강○○ 개인에 대한 채권이지 양도인인 안○○에 대한 채권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원고는 처음에 강○○ 씨를 상대로 소송해 판결을 받았으니, '원고 스스로 강○○가 채무자임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원고는 "사업자등록 명의가 안○○인 이상, 그 명의로 운영된 '○○바다' 영업에서 발생한 물품대금은 당연히 양도인 안○○의 영업상 채무"라고 반박했습니다. 강○○ 씨를 상대로 먼저 판결을 받은 것은 그가 어머니로서 영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거래를 직접 담당했기 때문일 뿐, 사업의 외형적 주체는 명의자인 안○○ 씨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안○○ 씨가 개인회생을 신청하면서 원고를 채권자 목록에 올린 사실까지 제시했습니다.
쟁점 ③ 채무 면탈을 위한 '바지사장' 양도인가
원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이 영업양도 자체가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한 외관(허위) 양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 양도계약 엿새 뒤 양도인이 개인회생을 신청한 점, ㉡ 실질 운영자가 여전히 가게에서 일하는 점, ㉢ 영업 대금이 양도인 측 가족 계좌로 들어가는 점을 종합하면, 피고는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실제 사업 주체는 여전히 양도인 일가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피고는 이 지점을 역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원고는 한편으로는 진짜 영업양도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채무 면탈용 허위 양도라고 한다.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된다. 만약 허위 양도라면 영업양도를 전제로 한 상법 제42조가 아니라 사해행위취소(채권자취소권)로 다투어야 한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양측 모두 만만치 않은 공방을 벌인 셈입니다.
4.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의 법리
이 사건의 승패를 가른 핵심 법리, 상법 제42조 제1항의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을 그림으로 먼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조문과 취지
상법 제42조 제1항은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는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에 대하여 양수인도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정합니다. 왜 이런 규정이 있을까요? 영업이 넘어갔는데도 같은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으면, 거래 상대방인 채권자는 주인이 바뀐 사실 자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누구에게 빚을 받아야 할지 혼란에 빠져 채권 회수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법은 외관을 신뢰한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같은 상호를 쓰는 양수인에게도 책임을 지운 것입니다.
(2) 영업양도의 판단 기준 — 형식이 아니라 실질
대법원은 상법 제42조의 '영업'이란 일정한 영업 목적으로 조직화된 유기적 일체로서의 기능적 재산을 말하고, 영업양도란 그 영업재산을 동일성을 유지한 채 일체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핵심은 "양수인이 양도인이 하던 것과 같은 영업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가"입니다(대법원 2005. 7. 22. 선고 2005다602 판결). 그리고 이러한 영업양도는 반드시 명시적 계약서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묵시적 합의로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7다17123, 17130 판결).
즉 계약서에 '비품 양도'라고만 적혀 있어도, 실제로 같은 장소·같은 상호로 같은 영업이 이어지고 핵심 설비와 거래처·고객관계가 함께 넘어갔다면 실질적으로 영업양도로 평가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3)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채권'의 의미
상법 제42조의 책임은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에 미칩니다. 대법원은 이를 영업상의 활동에 관하여 발생한 채무 전반을 의미한다고 넓게 해석합니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다5862 판결). 따라서 음식점 영업을 위해 수산물을 납품받고 생긴 물품대금 채무는, 그 영업의 명의자가 진 전형적인 '영업상 채무'에 해당합니다.
또한 대법원은 양도인이 회사(법인)인 경우, 회사 명의로 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업을 위한 행위로 추정된다고 봅니다. 즉 영업과 무관한 개인적 채무라는 점이 따로 밝혀지지 않는 한, 그 명의로 발생한 채무는 영업상 채무로 다루어집니다. 사업의 외형(명의)을 신뢰한 거래 상대방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취지입니다.
(4) 양수인은 어떻게 책임을 면할 수 있나
그렇다면 영업을 인수한 사람은 무조건 종전의 빚까지 떠안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법은 양수인을 위한 '탈출구'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채무를 인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영업양도 후 지체 없이 등기하거나, 양도인과 양수인이 그 뜻을 제3자(채권자)에게 통지한 경우에는 상호를 계속 쓰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상법 제42조 제2항). 또한 애초에 상호를 바꾸어 영업한다면 상호 속용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이 책임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업을 넘겨받을 때는 ① 종전 영업에 어떤 채무가 숨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② 채무를 인수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상호를 바꾸거나 '채무 불인수' 사실을 명확히 공시·통지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사건의 피고는 같은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이러한 면책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기에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대가 상호를 그대로 둔 채 영업을 넘겼다면 바로 이 점이 회수의 실마리가 됩니다.
5. 결론 — 원고 승소 판결로 종결
대전지방법원은 2026년 2월 11일, 원고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개인정보를 가린 실제 판결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법원의 판단 — 영업양도를 인정하다
법원은 피고와 양도인 사이의 양도계약서에 임대차 관련 채무, 상호, 영업용 장치, 비품 일체를 넘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여기에 피고가 양도인의 영업과 유사한 영업을 계속한 점까지 더하여 보면, 이 거래는 상법상 '영업양도'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한 비품 양도나 권리금 거래에 불과하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법원은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보아, 상호를 계속 사용한 양수인인 피고에게 양도인의 영업상 채무를 변제할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2) 판결 주문 — 무엇을, 얼마나 받게 되었나
법원은 피고에게 다음과 같이 지급을 명했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지급할 원금 | 28,552,170원 |
| 지연이자 | 2024. 5. 28.부터 선고일(2026. 2. 11.)까지 연 6%,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 |
| 소송비용 | 피고 부담 |
| 가집행 | 가능(즉시 집행 가능) |
다만 법원은 지연손해금 중 일부는 조정했습니다. 원고가 앞서 실질 운영자(강○○)를 상대로 받은 판결에서 인정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의 높은 지연손해금까지 그대로 양수인에게 물릴 수는 없다고 보아, 그 부분 청구는 일부 기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청구의 핵심인 원금 전액(28,552,170원)이 그대로 인정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원고의 완승에 가까운 결과였습니다.
이 사건은 청구액이 3,000만 원 이하여서 '소액사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소액사건의 판결서에는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이유를 자세히 적지 않을 수 있어, 판결문의 이유가 비교적 간결하게 기재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판결은 영업양도를 인정한 핵심 근거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3) 이 판결이 시사하는 점
이 판결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계약서의 형식보다 영업의 실질을 중시했다는 점입니다. '비품 양도'·'권리금'이라는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같은 상호로 같은 영업이 이어졌다는 실질을 근거로 영업양도를 인정했습니다. 둘째, 명의와 실질이 다른 가족 운영 사업에서도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사업자등록 명의자의 영업상 채무로 보아, 그 영업을 상호 그대로 넘겨받은 양수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형식적인 명의 이전만으로 채무를 떨쳐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입니다.
6. 이런 상황에서 특히 문제됩니다 — 상호속용 책임이 쟁점이 되는 유형
이 사건처럼 '간판은 그대로, 사장만 바뀐'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이 실제로 다투어지는 대표적인 유형을 살펴보면, 내 거래가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① 채무가 쌓인 가게를 가족·지인 명의로 넘기는 경우. 이 사건이 전형적입니다. 빚을 진 사업자가 강제집행이 임박하자 같은 자리·같은 간판으로 사업자만 가족이나 지인 명의로 바꾸는 것입니다. 외형상 주인은 바뀌었지만 실질은 그대로여서, 채권자는 상호 속용을 근거로 새 명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② 폐업 신고 후 같은 상호로 다시 문을 여는 경우. 한 번 폐업했다가 같은 상호로 영업을 재개하면서 운영 주체만 달라지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때도 영업의 동일성과 상호 속용이 인정되면 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③ 권리금만 주고받았다고 주장하는 가게 인수. "권리금만 줬을 뿐 영업을 산 게 아니다"라는 항변은 단골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법원은 계약서 제목이 아니라 실질을 봅니다. 같은 상호·같은 영업이 이어졌다면 권리금 거래라는 주장만으로 책임을 벗기 어렵습니다.
④ 법인의 자산만 새 법인으로 옮기는 경우. 개인 가게가 아니라 회사라면, 빚은 기존 법인에 남겨 둔 채 영업과 자산만 같은 상호의 새 법인으로 옮기는 방식이 쓰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는 상호속용 책임과 더불어 '법인격 남용' 법리까지 함께 검토됩니다.
7. 이 사례가 주는 교훈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이 사건의 시사점을 정리합니다.
첫째, 채무자가 가게를 넘겼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빚을 진 사람이 강제집행을 피하려고 영업을 제3자에게 넘기더라도, 같은 상호(간판)가 유지된다면 영업을 넘겨받은 양수인에게 상법 제42조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둘째, '계약서 제목'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합니다. 계약서에 '비품 양도'나 '권리금'이라고 적혀 있어도, 같은 자리·같은 상호·같은 영업이 이어지고 설비와 거래처가 함께 넘어갔다면 실질적인 영업양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셋째, 증거를 입체적으로 모으세요. 이 사건에서 원고는 사업자등록증, 양도계약서, 거래처가 계속 납품한다는 녹취록, 양도인의 개인회생 결정문, 대금이 가족 계좌로 입금된 내역 등 흩어진 정황을 하나의 그림으로 엮어 영업양도와 상호 속용을 입증했습니다.
넷째, 청구 전략을 정확히 설계해야 합니다. 채무자 본인을 쫓는 것이 막힐 때,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은 강력한 우회로가 됩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사해행위취소(채권자취소권)나 법인격 남용 등 다른 법리가 더 적합할 수 있으므로, 초기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진단해 가장 효과적인 청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①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상법 제42조) — 같은 상호로 영업을 이어받은 양수인에게 직접 대금을 청구.
② 사해행위취소(채권자취소권) — 빚을 피하려고 재산을 빼돌린 양도행위 자체를 취소시켜 원상회복.
③ 법인격 남용 법리 — 채무를 면탈하려고 껍데기만 다른 회사를 세운 경우, 그 새 회사에 책임.
어떤 무기가 가장 잘 통할지는 결국 그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결정합니다.
8. 자주 묻는 질문(FAQ)
- Q.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이 무엇인가요?
- A. 영업을 넘겨받은 사람이 종전 영업의 상호(간판)를 계속 사용하면, 그 영업에서 생긴 빚도 함께 갚아야 한다는 책임입니다(상법 제42조 제1항). 외관을 믿은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 Q. 계약서에 '비품만 양도한다'고 적혀 있으면 책임을 피할 수 있나요?
-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법원은 계약서 문구가 아니라 실질을 봅니다. 같은 장소·같은 상호로 같은 영업이 이어지고 핵심 설비·거래처가 함께 넘어갔다면 영업양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 Q. 사업자 명의자와 실제 운영자가 다른 경우 누구의 빚으로 보나요?
- A. 영업을 누가 명의로 운영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사업자등록 명의로 이루어진 영업에서 발생한 채무는 그 명의자의 영업상 채무로 보는 것이 원칙이며, 그 영업을 상호 그대로 넘겨받은 양수인이 책임질 수 있습니다.
- Q. 상호가 완전히 똑같아야만 책임이 인정되나요?
- A. 아닙니다. 대법원은 앞뒤 상호가 주요 부분에서 공통되기만 하면 '상호 속용'으로 봅니다. 글자가 완전히 동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 Q. 채무를 피하려는 허위 양도라면 어떻게 대응하나요?
- A. 상황에 따라 상호속용 양수인 책임(상법 제42조) 외에도, 사해행위취소(채권자취소권)나 법인격 남용 법리 등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청구가 유리한지는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 Q. 양수인이 책임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A. 상법은 양수인이 영업양도 후 지체 없이 '양도인의 채무를 인수하지 않는다'는 뜻을 등기하거나 제3자에게 통지한 경우 등에는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업을 인수할 때는 종전 채무 관계를 반드시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Q. 양수인이 채권자에게 빚을 갚으면, 그 돈을 양도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나요?
- A. 네. 상호속용 양수인의 책임은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양도인의 채무를 양수인이 최종적으로 떠안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양수인이 변제하면 실제 채무자인 양도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그만큼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 Q. 가게를 인수하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요?
- A. 종전 영업에 거래처 외상값, 세금, 임대료 체납 등 숨은 채무가 없는지 점검하고, 채무를 인수하지 않을 것이라면 상호를 바꾸거나 '채무 불인수' 사실을 통지·공시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양도계약서에 채무 부담 범위를 명확히 기재하는 것도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맺음말
이 사건은 "빚은 두고 가게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간판이 그대로라면, 영업을 넘겨받은 사람도 그 영업의 빚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막막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실관계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상법 제42조라는 든든한 회수 수단이 열려 있을 수 있습니다.
거래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상대방이 사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렸다면, 또는 반대로 영업을 인수하려는데 종전 채무가 걱정된다면, 계약서의 제목이 아니라 거래의 실질을 기준으로 한 번쯤 법률적 점검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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