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① 2026년 3월 12일부터 법원의 확정 재판도 헌법소원(재판소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약 37년 만의 큰 변화입니다.
② 청구는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세 가지 사유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하고, 재판관 3인의 지정재판부가 먼저 걸러냅니다.
③ 헌재가 재판을 '취소'해도 그 다음 절차(파기환송이냐 재심이냐)가 법에 없어 현장은 아직 혼선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 더는 다툴 방법이 없다고 여겨졌던 사건도, 조건만 맞으면 헌법재판소의 문을 한 번 더 두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문을 연 1988년 이래 약 37년 만의 큰 변화, 바로 재판소원(裁判訴願) 제도입니다.
"대법원까지 갔는데도 졌습니다. 정말 끝인가요?" 예전에는 저도 안타깝지만 "재심 사유가 없다면 사실상 끝입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6년 3월, 이 오래된 벽에 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오늘은 재판소원이 무엇인지, 누가 언제 어떻게 청구하는지,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큰 숙제까지 실무자의 눈으로 차근차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재판소원이란 무엇인가 — 37년 만에 열린 문
재판소원은 쉽게 말해 "법원의 재판 그 자체를 취소해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내는 헌법소원입니다. 여기서 헌재는 그 재판이 옳았는지(사실관계나 법률 해석이 맞았는지)를 다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재판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직접 침해했는지만 봅니다. 일반적인 상소(항소·상고)가 '4심'처럼 사실과 법률을 다시 판단해 달라는 것이라면, 재판소원은 오직 '헌법 위반'이라는 잣대 하나로 재판을 통제하는 특별한 절차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 재판소원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왔습니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문을 연 이래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고 못 박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재판만큼은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빼 놓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면서 정작 법원 재판은 못 건드린다"는 비판이 오래도록 이어졌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에는 25년 넘게 권한을 둘러싼 긴장이 있었습니다.
2026년 2월 27일, 국회는 이 조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해 3월 12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되었습니다. 37년 넘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린 셈입니다. 다만 모든 재판을 아무 때나 다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을 열되 그 폭은 좁게 설계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재판을 헌법소원에서 빼 두었을까요.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법원의 재판까지 헌재가 다시 들여다보면 사실상 대법원 위에 또 하나의 심급이 생기는 '4심제'가 되어, 최종심으로서 대법원의 지위가 흔들리고 분쟁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 정작 법원의 잘못된 재판으로 침해되었을 때 이를 바로잡을 마지막 통로가 없다면 기본권 보장이 반쪽에 그친다고 보았습니다. 오랜 논쟁 끝에 국회는 '전면 허용'도 '전면 금지'도 아닌, 사유를 좁게 한정한 제한적 허용이라는 절충안을 택한 것입니다. 이 절충의 흔적이 뒤에서 볼 세 가지 청구 사유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표1] 헌법재판소법 개정 전후 비교
| 구분 | 개정 전 (~2026.3.11.) | 개정 후 (2026.3.12.~) |
|---|---|---|
| 법원 재판 |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원칙적 금지) | 일정 요건 충족 시 대상에 포함 |
| 대상 재판 | – | 확정된 재판 |
| 청구기간 | – | 확정일부터 30일 이내 |
| 사전심사 | 지정재판부(3인) | 지정재판부(3인)가 사유 없으면 각하 |
누가·언제·어떻게 — 요건과 절차
재판소원은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순서대로 짚어 보겠습니다.
1) 대상 — '확정된' 재판만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은 대상이 아닙니다. 항소·상고 등 통상의 불복 방법을 다 거쳐 더 이상 다툴 수 없게 확정된 재판이라야 합니다. 재판이 확정되기 전이라면 원래의 상소 절차로 다투는 것이 먼저입니다.
2) 사유 — 세 가지 중 하나 (제68조 제3항)
개정법은 아무 재판이나 다툴 수 없도록 신설된 제68조 제3항에 청구 사유를 셋으로 한정했습니다.
[표2] 재판소원 청구 사유 세 가지
| 구분 | 법이 정한 사유 | 쉽게 풀면 |
|---|---|---|
| ① |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하여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 헌재가 위헌·한정위헌으로 정리한 것을 법원이 무시하고 반대로 판단한 때 |
| ② |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여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 지켜야 할 절차(적법절차)를 건너뛴 때 |
| ③ |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 누가 봐도 헌법·법률 위반이 분명한 때(단순한 사실오인·법리다툼은 제외) |
※ ③의 '명백'이라는 단어가 핵심입니다. 판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고, 헌법·법률 위반이 뚜렷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으로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3) 기간·서류 — 30일, 그리고 확정증명원
청구기간이 확정일부터 30일로 매우 짧습니다(제69조 제1항). 일반 헌법소원의 기간(사유를 안 날부터 90일, 있은 날부터 1년)보다 훨씬 촉박하므로, 확정판결을 받았다면 바로 검토에 들어가야 합니다. 청구서에는 재판서와 그 확정증명원을 붙여야 합니다(제71조 제4항). 확정증명원은 해당 법원에서 발급받습니다.
4) 사전심사 — 3인 지정재판부의 문턱
접수됐다고 바로 본안 심리로 가지 않습니다.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먼저 살펴, 앞서 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면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합니다(제72조 제3항). 실제로 제도 시행 초기 한 달여 동안 수백 건이 접수되었지만, 사전심사를 거친 사건은 상당수가 이 단계에서 각하되었습니다. 문은 열렸지만 문턱은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5) 효력정지 가처분 — 청구만으로 집행이 멈추지 않는다
재판소원을 냈다고 해서 원래 판결의 효력이나 집행이 자동으로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개정법은 가처분 규정을 신설해(제71조의2), 헌재가 종국결정 선고 시까지 심판 대상이 된 공권력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별도의 가처분 인용을 받아야만 집행이 멈춥니다. 헌재도 형 집행 중인 수감자에 대한 가처분 인용 가능성은 "사실상 매우 협소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6) 인용 — 재판의 '취소'
본안 심리 끝에 기본권 침해가 인정되면, 헌재는 해당 재판을 취소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75조 제4항).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글의 두 번째 핵심이 시작됩니다.

판례로 본 재판소원 — 금지 시절에도 열려 있던 예외
재판소원이 2026년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제도는 아닙니다. 금지 조항이 살아 있던 시절에도, 헌법재판소는 "헌재의 결정을 무시한 재판"만큼은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다고 보아 왔습니다. 개정법 제68조 제3항 제1호(헌재 결정에 반하는 재판)는 사실상 이 판례의 흐름을 법으로 옮겨 담은 것입니다.
▶ 헌재 1997. 12. 24. 선고 96헌마172·173(병합) 결정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한 사건입니다. 헌재가 어떤 법률조항을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한정위헌으로 결정했는데도, 법원이 그 결정을 따르지 않고 종전대로 적용해 재판하자, 헌재는 그런 재판은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어서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헌재 결정의 기속력(따라야 하는 힘)'을 재판소원의 뿌리로 세운 결정입니다.
▶ 헌재 2022. 6. 30. 선고 2014헌마760·763(병합) 결정
약 25년 만에 헌재가 다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한 사건입니다. 헌재는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명시하며, 위헌으로 선언된 법률을 근거로 한 재판을 바로잡았습니다.
▶ 헌재 2022. 7. 21. 선고 2013헌마496 결정 [재판취소 등]
위 결정과 같은 해에 나온 재판취소 인용 결정으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을 벗어난 재판을 취소한 사례입니다. 이 세 결정이 쌓이며 "완전한 금지가 아니라 좁은 예외는 열려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고, 2026년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 사건번호·선고일자는 casenote 등 판례 데이터베이스에서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 결정들은 재판소원의 이론적 토대가 된 대표 사례입니다.
이겨도 끝이 아니다 — 취소 '다음'이 비어 있다
재판소원에서 헌재가 재판을 취소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건은 어느 법원, 어느 심급으로 돌아가며, 그때까지 원래 판결의 효력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놀랍게도 현행법에는 이 '다음 절차'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습니다. 개정법은 "재판을 취소한다", "법원은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하여야 한다"고만 정해 두었을 뿐입니다.
참고로 재판소원의 본고장인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법 제95조에서 "결정을 취소하고 관할 법원에 환송한다"고 절차까지 명시합니다. 우리 개정법에는 이 '환송'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그 결과 실무에서는 두 가지 모델이 부딪칩니다.
[표3] 재판 취소 이후 — 두 가지 해석 모델
| 구분 | '파기환송' 모델 | '재심' 모델 |
|---|---|---|
| 종전 판결의 효력 | 헌재의 취소 즉시 소급해서 상실 | 새 재판부가 다시 결정할 때까지 유지 |
| 실형 수감자라면 | 판결 효력이 사라져 곧바로 석방 | 취소만으로는 석방되지 않음 |
| 기존 소송법과의 관계 | 민·형사소송법에 '환송' 근거가 없어 충돌 소지 | 기판력 유지와 상대적으로 덜 충돌 |
헌법재판소는 공식적으로 "파기환송 결정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면서도, 간담회에서는 "취소되면 법원의 재판은 소급해서 효력이 상실된다"고 설명해 파기환송 구조에 가까운 뉘앙스를 내비쳤습니다. 다만 헌재는 재판소원을 낸 것만으로 당해 재판의 효력이 정지되지는 않으며 집행도 계속된다는 점, 그리고 '재심'(법원 내부에서 기판력을 깨는 절차)과 '재판 취소'(외부 기관인 헌재가 헌법 위반을 이유로 취소하는 것)는 개념부터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법 개정 없이 재판 취소를 곧바로 '파기환송'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독일과 달리 우리 민사·형사소송법은 헌재의 재판 취소 뒤 사건을 '환송'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자칫 기존 소송법 체계와 부딪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각각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리하면, 재판소원에서 이겨 재판이 취소되더라도, 그 뒤가 저절로 매끄럽게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후속 입법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오래전에 확정된 판결도 지금 재판소원을 낼 수 있나요?
시행 전에 확정된 재판도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청구기간(확정일부터 30일)이 매우 짧습니다. 제도 시행에 맞춰 접수가 몰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체적 사안은 기간 기산점을 반드시 개별 검토해야 합니다.
Q2. 판결이 부당하다고 느끼면 다 낼 수 있나요?
아닙니다. 단순한 사실오인이나 법리 다툼은 대상이 아닙니다.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적법절차를 어겼거나, 헌법·법률 위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합니다. 문턱이 높다는 점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Q3. 재판소원을 내면 판결 집행이 멈추나요?
청구만으로는 멈추지 않습니다. 집행을 멈추려면 별도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야 하고, 그 인용 문턱도 높습니다.
Q4. 재판소원과 재심은 무엇이 다른가요?
재심은 법원 내부에서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깨는 절차이고, 재판소원은 외부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헌법 위반을 이유로 재판을 취소하는 절차입니다. 출발점과 판단 주체가 다릅니다.
실무 체크포인트 — 청구 전 스스로 점검할 것
상담을 준비하실 때 아래 네 가지를 먼저 정리해 오시면 진단이 훨씬 빨라집니다. 첫째, 재판이 언제 확정되었는지입니다. 30일이라는 기간의 출발점이 되므로 확정일 특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 내 사건에 관련된 헌재 결정이 있었는지입니다. 위헌·한정위헌 결정이 있었는데 법원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면 첫 번째 사유(제68조 제3항 제1호)에 닿을 수 있습니다. 셋째, 절차상 빠뜨린 것이 없었는지입니다. 송달, 기일 통지, 방어권 보장 같은 적법절차가 지켜졌는지 살펴야 합니다. 넷째, 헌법·법률 위반이 '명백'하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는지입니다. 단순히 결론이 부당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조문과 판례로 뒷받침되는 뚜렷한 위반이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가 정리되면 각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 실무자의 당부
재판소원은 확정판결에 억울함이 남은 분들에게 분명 의미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30일이라는 짧은 기간, 좁은 세 가지 사유, 높은 사전심사 문턱, 그리고 취소 이후 절차의 불확실성까지 감안하면, 감정만으로 뛰어들 제도는 아닙니다. 확정판결을 받으셨다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내 사건이 세 가지 사유 중 하나에 '명백히' 해당하는지부터 냉정하게 진단받으시길 권합니다.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 판례와 후속 입법이 더 쌓여야 할 것이고, 저 역시 현장에서 그 변화를 계속 전해 드리겠습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와 최신 개정·판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건은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