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이란 무엇인가: 60년 만의 무죄, 최말자·김신혜 사건으로 본 재심
- 재심은 확정된 유죄 판결에 중대한 잘못이 있을 때 그 사건을 다시 재판하는 비상 구제 절차입니다.
- 아무 때나 열리지는 않습니다. 위조된 증거, 허위 증언, 수사기관의 직무 범죄, 무죄를 밝힐 명백한 새 증거 같은 법정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420조).
- 60년 만에 재심의 문이 열린 최말자 사건, 무기수 25년 만에 무죄를 받은 김신혜 사건이 재심이 왜 필요한지 보여 줍니다.

확정판결은 웬만해선 뒤집을 수 없습니다. 재판이 끝없이 되풀이되면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확정판결이 조작된 증거나 강압 수사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억울하게 유죄를 받은 사람이 평생 그 낙인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한 제도가 바로 재심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재심의 뼈대와, 최근 세상을 울린 두 사건입니다. 60년 만에 재심의 문이 열린 최말자 사건과, 무기수로 25년을 버틴 끝에 무죄를 받은 김신혜 사건입니다. 두 사건을 따라가면 재심이 무엇이고 언제 열리며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1. 재심이란 무엇인가
재심은 이미 확정된 유죄 판결에 중대한 흠이 있을 때, 그 사건을 다시 심리해 바로잡는 비상구제절차입니다. 일반 항소·상고가 확정 전에 다투는 절차라면, 재심은 확정된 뒤에 예외적으로 다시 여는 절차라는 점이 다릅니다.
재심에는 두 가지 큰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이익재심입니다. 형사 재심은 유죄를 받은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허용됩니다. 검사가 무죄 확정자를 다시 처벌하려고 재심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불이익변경 금지입니다. 재심에서 다시 재판하더라도 원래 판결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439조). 억울함을 풀러 왔다가 형이 더 늘어나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제도로 비상상고가 있지만 결이 다릅니다.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의 법령 위반을 검찰총장이 바로잡아 법령 해석을 통일하는 절차인 반면, 재심은 사실인정의 잘못을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바로잡는 절차입니다. 확정판결을 함부로 흔들지 않되 그 판결이 뿌리부터 잘못됐다면 예외를 열어 두는 것,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균형점에 재심이 있습니다.
2. 60년 만에 열린 문: 최말자 사건
1964년, 당시 18세였던 최말자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21세 남성이 강제로 입을 맞추려 하자 혀를 깨물어 저항했습니다. 정당방위였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중상해죄로 1965년 1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반면 가해 남성은 훨씬 가벼운 처벌에 그쳤고, 검찰은 강간미수 혐의를 불기소했습니다.
최 씨는 2020년, 사건이 있은 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2024. 12. 18.자 2021모2650 결정(주심 오경미 대법관)은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서 재심의 문을 연 법리가 핵심입니다. 대법원은 당시 수사기관이 최 씨를 영장 없이 불법으로 체포·감금했을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영장 없는 불법 구금은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직권남용 체포·감금)에 해당하는데,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입니다. 다만 그 범죄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경우 제422조에 따라 그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재심사유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원심이 잘못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환송 뒤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부산고등법원이 재심개시를 결정했고, 다시 열린 재심 공판에서 부산지방법원은 2025. 9. 10.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60년 전 정당방위가 마침내 법적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짚고 갈 점. 재심의 '문을 연' 법리는 정당방위 자체가 아니라 위법한 수사(직무 범죄)였습니다. 정당방위 인정은 문이 열린 뒤 재심 공판에서 사실관계를 다시 따진 결과입니다. 재심을 여는 단계와 다시 재판해 무죄를 가리는 단계는 이렇게 구분됩니다.
3. 무기수 25년의 무죄: 김신혜 사건
재심이 얼마나 무거운 판결까지 뒤집을 수 있는지 보여 준 사건이 김신혜 씨 사례입니다. 2000년, 김 씨는 소아마비를 앓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24년 10개월을 복역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죄를 뒷받침한 직접 증거는 사실상 본인의 자백뿐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였다거나 시신을 옮겼다는 물증은 없었습니다.
김 씨는 재판에서 무죄를 호소했습니다. "남동생이 한 것 같다"는 친척의 말을 듣고 동생 대신 감옥에 가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습니다. 김 씨는 24년 넘게 노역을 거부하고 독거실에서 지내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2015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의 도움으로 재심 개시가 결정됐습니다. 법원은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과 현장검증을 한 점, 압수수색에 참여하지 않은 경찰관이 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점 등을 강압·위법 수사로 보았습니다. 검찰의 불복으로 재심 재판은 2019년에야 시작됐고, 마침내 2025. 1. 6.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은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부검상 다량의 약을 복용한 흔적이 없다는 점,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아 그 자체가 사망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법정에서 부인한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공판중심주의). 무기수가 재심으로 무죄를 받은 첫 사례로,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한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고 말했습니다.
4. 어떤 경우에 재심이 되나 (재심사유)
재심은 억울하다는 호소만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가 정한 법정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문제 되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항 | 사유 |
|---|---|
| 제1호 |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나 증거물이 위조·변조된 것으로 증명된 때 |
| 제2호 | 원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감정·통역·번역이 허위임이 증명된 때 |
| 제5호 | 무죄·면소·형 면제 또는 원판결보다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때 |
| 제7호 | 재판에 관여한 법관, 수사·공소에 관여한 검사·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 |
| 제422조 | 위 범죄에 대해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공소시효 완성 등)에는 그 사실을 증명해 재심청구 가능 |
이 밖에 무고로 유죄를 받은 경우(제3호), 원판결의 증거가 된 재판이 뒤에 바뀐 경우(제4호) 등도 사유가 됩니다. 최말자 사건은 제7호와 제422조의 조합, 앞서 본 김신혜 사건은 위법한 강압 수사가 문제 된 사례입니다.

5. 재심은 어떻게 진행되나
재심은 두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재심을 열지 말지를 정하고, 열기로 하면 다시 재판합니다.
- 재심청구: 유죄 확정판결을 선고한 법원에 청구합니다. 형의 집행이 끝났거나 사망한 뒤에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제427조).
- 재심개시결정: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되면 법원이 재심개시를 결정합니다(제435조). 이 단계에서는 유·무죄를 가리지 않고 '사유가 있는지'만 봅니다.
- 재심 공판: 개시결정이 확정되면 그 심급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심판합니다(제438조). 여기서 비로소 유·무죄를 다시 판단합니다.
- 선고: 원판결보다 무거운 형은 선고할 수 없습니다(제439조, 불이익변경 금지).
최말자 사건에서 원판결이 1심 지방법원 판결이었기에, 대법원 환송 뒤 부산고등법원이 재심개시를 결정하고 재심 공판(무죄 선고)은 그 심급인 부산지방법원이 맡았습니다. 재심개시와 재심 공판을 서로 다른 법원이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6. 판례로 보는 재심
재심의 문이 열리는 지점은 사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사건은 수사기관의 위법이, 어떤 사건은 새로 발견된 증거가 계기가 됩니다. 아래 판례들은 재심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판시 수사기관의 영장 없는 불법 체포·감금은 직무에 관한 죄로서 제420조 제7호 사유가 되고, 그 죄의 공소시효가 지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면 제422조에 따라 그 사실을 증명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결과 원심 파기·환송. 이후 재심 공판에서 무죄 확정(2025. 9. 10.).
판시 제420조 제5호의 새 증거는 법원뿐 아니라 청구인에게도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제출하지 못한 데 과실이 없어야 합니다. '명백성'은 새 증거만 따로 보지 않고 기존 증거까지 종합 평가해, 유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을 때 인정됩니다.
의의 오늘날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리딩 결정입니다.
판시 필적 감정 등 핵심 증거의 신빙성이 무너졌다고 보아, 자살방조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의의 과거 수사·감정의 오류를 재심으로 바로잡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판시 불법 체포와 가혹행위로 받아 낸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아, 20년 옥살이를 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의의 위법 수집 증거와 허위 자백이 재심 무죄로 이어지는 전형을 보여 줍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광주고법 2016. 11. 17. 재심 무죄) 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 사건 | 법원 · 선고 | 결과 |
|---|---|---|
| 최말자 (정당방위) | 대법원 2021모2650 파기환송(2024. 12. 18.) → 부산지법 재심(2025. 9. 10.) | 무죄 확정 |
| 김신혜 (친부살해 누명) | 광주지법 해남지원(2025. 1. 6.) | 무죄 |
| 강기훈 (유서대필) | 대법원 2014도2946(2015. 5. 14.) | 무죄 확정 |
| 윤성여 (화성 8차) | 수원지법 2019재고합17(2020. 12. 17.) | 무죄 |
|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 광주고법 재심(2016. 11. 17.) | 무죄 확정 |
7.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재심 무죄는 명예 회복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갇혀 있던 기간에 대해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위법한 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형사보상은 구금 일수에 따라 법이 정한 기준으로 지급되며, 무죄가 확정된 사실을 관보와 법원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청구하는 명예회복 조치도 함께 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법 체포나 직권남용 같은 위법행위는 형사상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렵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되살아나 배상을 받을 길이 열립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사건일수록 형사보상과 국가배상을 함께 챙겨야 실질적인 회복이 됩니다. 다만 이들 청구에는 각각 기간 제한이 있으므로, 무죄 확정 직후 서둘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8. 재심을 고려한다면
제가 재심 상담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재심사유부터 특정하는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제420조의 어느 호에 해당하는지를 구체적 자료로 연결해야 합니다. 위조·허위가 드러난 증거가 있는지, 수사 과정에 영장 없는 체포나 가혹행위 같은 위법이 있었는지, 원판결 뒤에 새로 확보된 객관적 증거가 있는지를 하나씩 짚습니다.
둘째, 기록 확보가 관건입니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수사기록, 공판조서, 감정서 같은 원자료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셋째, 재심은 개시결정 단계와 재심 공판 단계가 나뉘므로, 우선 문을 여는 데 필요한 증명에 집중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김신혜 사건이 그랬듯 개시결정까지도 여러 해가 걸릴 수 있으니, 길게 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두 사건이 공통으로 보여 준 것은 일관된 진술과 포기하지 않는 기록이 끝내 진실을 뒷받침한다는 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형을 다 살고 나온 뒤에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나요?
네. 형의 집행이 끝났거나 형을 받지 않게 된 뒤에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제427조). 사망한 사람의 명예를 위해 유족이 청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냥 억울하다고 느끼면 재심이 되나요?
아닙니다. 위조된 증거, 허위 증언, 수사기관의 직무 범죄, 무죄를 밝힐 명백한 새 증거 같은 제420조의 법정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사실오인 주장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재심에서 형이 더 무거워질 수도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재심은 유죄를 받은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열리고, 원판결보다 무거운 형은 선고할 수 없습니다(불이익변경 금지, 제439조).
재심 무죄를 받으면 보상도 받나요?
구금 기간에 대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위법 수사에 대해서는 국가배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무죄 확정 시점을 기준으로 배상 청구의 길이 열립니다.
재심과 비상상고는 어떻게 다른가요?
재심은 사실인정의 잘못을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바로잡는 절차이고,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의 법령 위반을 검찰총장이 바로잡아 법령 해석을 통일하는 절차입니다. 억울한 유죄를 다투는 일반적인 통로는 재심입니다.
마무리 요약
재심은 확정판결의 안정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판결이 조작·강압·오류로 만들어졌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마지막 통로입니다. 아무 때나 열리지 않고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법정 사유가 있어야 하며, 위법한 수사(제7호·제422조)나 명백한 새 증거(제5호)가 대표적입니다. 열린 뒤에는 그 심급에서 다시 재판하되 형이 무거워지지는 않습니다. 60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최말자 사건과 무기수 25년 만의 무죄를 받은 김신혜 사건은, 늦더라도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재심의 존재 이유를 보여 줍니다. 두 사건 모두 한 사람의 포기하지 않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한 기록, 그리고 위법한 수사를 밝혀낸 법리가 만나 오랜 억울함을 풀었습니다. 억울한 확정판결로 고통받고 있다면, 사유에 해당하는지부터 변호사와 함께 차분히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재심의 문은 좁지만, 분명히 열려 있습니다.